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국회에 권총이 많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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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수복 후, 맥아더는 5년 전 말라카냥 궁에서 필리핀의 민정을 복구시킨 것처럼
이제 서울의 탈환된 중앙청에서 그 때와 똑같은 환도식을 거행하겠다고 펜타곤에 알렸다.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를 계획중이던 국무성이 즉각 반대의사를 표하면서
워싱턴에서는 원수에게 대한민국 정부를 원상복구하기 위해서는 "고위층의 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맥아더는 "이 공문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는 가시돋친 회신을 보냈다.
그는 "공화국(대한민국)의 현 정부는 그 기능이 결코 정지되었던 적이 없었다." 며,
대한민국 정부를 "그 헌법적 위치"로 복귀시키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강조했다.
(중략)일본으로 돌아가서 전용기에 아내 진을 태운 뒤, 1950년 9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맥아더는 이.승만과 함께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원수와 그의 아내, 그리고 대한민국 대통령은 5성 원수기가 나부끼는 시보레 승용차에 함께 탔고,
4대의 시보레와 40대의 지프가 그 뒤를 따랐다.
처음에 맥아더는 아주 신이 나 있었다.
그는 길 양옆에 늘어서서 개선행렬을 향해 작은 종이 태극기를 흔드는 아이들에게 즐겁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행렬이 황폐해진 서울 시내로 들어갈수록 원수는 점점 침울해졌다.
도로 양쪽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불타버린 집과 학교들, 약탈당한 상점들, 박살나버린 정부 건물들의 폐허뿐이었던 것이다.
행렬이 마포를 거쳐 세종로로 들어가기 위해 잿더미와 쓰레기더미 속에서 이리저리 해멜 때쯤에는
그는 거의 울기 직전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12시 정각, 맥아더는 이.승만과 팔짱을 끼고 함께 중앙청에 입성했다.
한 참모가 최고사령관 일행 전원이 권총을 찬 것을 보고,
"이 나라 국회가 열린 이래로 이곳에 이렇게 많은 권총이 들어온 적이 없겠군요." 라고 농담을 던졌다가
맥아더가 거의 흰자위만 보일 정도의 눈으로 노려보며 눈치를 주자 찔끔해 움츠러들었다.
원수에게 있어 그 순간은 단순한 승리의 순간이 아니라, 성스러운 봉헌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중략)환도식이 거행되는 동안에도 중앙청 한쪽은 여전히 불타고 있었다.
코를 찌르는 연기가 문으로 새어들어오고, 밖에서는 중포의 소리가 지축을 흔들어대면서
중앙청 위쪽의 너덜너덜해진 유리창들이 덩달아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창유리가 떨어져 박살이 나면서 파편이 튀자, 장교들은 재빨리 방탄모를 썼지만
맥아더는 머리에 아무 것도 쓰지 않은 채 연설을 마쳤다.
그는 힘찬 목소리로 이.승만에게 "자비로우신 주님의 섭리와 은총에 힘입어,
인류의 가장 위대한 소망이자 영감인 UN의 깃발 아래 싸우고 있는 아군은 한국의 이 고도를 해방시켰습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이 민간 정부의 책임을 자유로이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고 말했다.
이.승만은 "우리들은 장군을 찬양합니다. 장군을 우리 민족의 구세주로서 사랑합니다.
어찌 제가 저 자신과 온 한국 국민이 장군께 느끼는 영원한 감사의 마음을 이루 다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답례했다.
- "아메리칸 시저 : 맥아더 평전" 2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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