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정 문화재 이천보 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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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대는 높은 기둥과 들보로 구성하였고, 단면이 사각형인 납도리를 올려놓아 서까래를 받치고 있다. 나무는 비교적 정교히 다듬고 공간구성도 짜임새 있게 되어 있다. 본체에는 상고당(尙古堂), 옥경산방(玉磬山房), 반계정사(磻溪精舍) 등 당호 현판이 걸려 있다.
당시 건물은 모두 소실되고 현재 있는 건물은 1867(고종 4년)에 다시 지은 것인데, 한국전쟁으로 안채는 모두 불에 타 버렸고 지금은 사랑채와 행랑채만 남아 있다. 당시 사대부들의 생활상을 살필 수 있는 몇몇 남아있지 않는 소중한 주거 건축물이다.
사랑채는 일자형 건물로 앞면 6칸·옆면 1칸 반 규모이다. 왼쪽에 누마루를 두고 방·대청, 방·부엌 순으로 이어져 있다. 누마루 쪽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고 부엌 쪽은 옆면 지붕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기단과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은 이천보가 살았던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잘 다듬어 쌓은 장대 기단 위에 높이가 1자 가량 되는 사다리꼴로 다듬은 주춧돌을 놓았다.
뼈대는 높은 기둥과 들보로 구성하였고, 단면이 사각형인 납도리를 올려놓아 서까래를 받치고 있다. 나무는 비교적 정교히 다듬고 공간구성도 짜임새 있게 되어 있다. 본체에는 상고당(尙古堂), 옥경산방(玉磬山房), 반계정사(磻溪精舍) 등 당호 현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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