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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정 문화재 연안 이씨 삼세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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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평문화원
댓글 0건 조회 5,097회 작성일 18-07-13 17:03

본문

 

안이씨 삼세비각은 이정구, 이명한, 이일상(삼대 대제학)의 신도비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정구의 자는 성징이고 월사는 그의 호이며, 본관은 연안이다. 그는 15세에 진사에 합격하였고 선조 23(1590)27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명과의 대외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국가적 난국을 타개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워 이후 호조판서, 예조판서, 좌의정, 우의정을 거치면서 순탄한 관료생활로 일생을 마쳤다.

이명한의 자는 천장이고, 호는 백연으로 선조 29년인 서기 1595년에 월사 이정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22세에 증광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정자와 전적을 거쳐 대사헌, 대제학, 이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성리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시와 글씨에도 뛰어났다. 인조23년인 서기 1645년에 향년 51세에 영면하였고 시호는 문정이며, 묘는 상면 태봉리 월사의 묘 위에 있다.

이일상의 자는 함경, 호는 청호로 1612728일 월사 이정귀의 손자이자 이조판서 이명한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질이 뛰어나 신동으로 불렸으며, 17세에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나이가 어려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고 있다가 22세 되던 해에 설서의 직책으로 관직에 나아갔다. 효종으로 하여금 북벌계획을 수립토록 하는데 크게 기여 하였고, 1660년 현종이 임금에 오른 뒤부터 대제학, 우참찬, 한성부판윤, 지의금부사, 춘추관사, 호조판서등 주요 요직을 거치다가 예조판서로 있을 때 향년 55세에 이르러 별세한 뒤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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