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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색리 마을명 : 벌태봉(중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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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평문화원
댓글 0건 조회 5,475회 작성일 15-06-1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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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명 : 벌태봉(중색현)

내서면 중색현을 태봉(胎峰)(胎封 또는 胎陵이 있는 봉우리) 밑의 벌판이라고 하여 벌 태봉으로 불렀고, 벌 태봉과 개미데미를 통행하는 중고개(중색현:中色峴-중고개가 증 고개, 또는 정 고개로 변화된 듯)가 실제로 있었는데 현재는 없어졌다.

불기산(佛岐山 : 부처님처럼 솟아 오른 산, 佛基山 : 부처님이 자리잡은 산)의 정기가 동쪽으로 흐르다가 뭉쳐진 태봉 앞 벌판에 형성된 마을로 태봉을 중심으로 좌청룡 우백호의 지리적 조화가 잘 이루어진 지역이다.

태봉은 조선 중종 대왕의 태를 묻은 봉우리이다. 일제시대에 전국의 태봉(胎封 : 또는 胎陵)을 모두 헐어 고양시 원당 서3능 옆으로 태함(胎函)만 이장한 바 그들은 도굴을 예방하고 효율적 관리를 도모한다고 하였으나, 참뜻은 왕조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한편 부장품을 발굴하고자 한 것이다.

이곳도 그 때에 파손된 것으로 보이며, 태봉 비석과 그 비갈(碑碣 : 거북이 모양의 비를 새우는 밑받침 돌)이 산록 길가에 방치되었던 것을 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1987년 향토유적 6호로 복원하였는데 태함(胎函)은 지상에 노출시켜 그 원형을 관찰할 수 있으며, 태봉의 규모와 형태를 학습할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지만 그것은 외형만의 일이고, 주권을 빼앗긴 국민이 겪어야 하는 수모가 얼마나 큰가도 아울러 생각해야 할 것이다.

가평읍지에는 중색현리(中色峴里)로서 15호의 민가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사년월일 : 1999. 8. 17. 제보자 : 이장 김종환, 주민 신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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