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안리 마을명 : 전 패(전패: 戰敗, 전패 : ??, 또는 증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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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명 : 전 패(전패: 戰敗, 전패 : ??, 또는 증패 : ??)
전패는 후 고구려의 궁예가 패전 후 일시 이곳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쉬어 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전패(戰敗)설과, 키 큰(긴) 나무(? : 긴 나무 전)가 많은 땅(? : 땅 이름패)이라는 뜻으로 전패(??)라는 설, 상고사 시대부터 섭나무를 쌓아올린 귀틀집이 있던 곳이라는 증패(??)설이 있다.
연인산으로 올라가는 둔덕을 가리킨다.
궁예가 말년에 자기를 산 미륵불이라고 하며 남의 마음을 읽는다(讀心術)고 할 정도로 자기를 신격화하여, 신하들에게 "네가 반역의 마음을 품고 있지?" 하며 다구쳤을 때, 이를 수긍하고 용서를 빌면 자기의 독심술이 용하다고 자만하며 부하를 용서하고, 역심이 없다고 결백을 주장하면 죽였다고 할 정도로 돌았다고 한다.
그 무렵 부인을 의심하고(의처증) 자식도 친자식이 아니라고 의심하여 이 곳에 유폐하였다고 하는데, 그러나 부인과 그 아들은 궁예의 의심이 풀리기를 빌며 고국 땅인 철원이 그리워 한없이 바라보았다는 국망봉(國望峰), 또는 나라가 하루 빨리 망하기를 빌었다는(國亡峰), 그리고 국가의 안녕을 비는 제사(國祀)를 올리는 (성황)당 고개가 있었다고 하여 이 고개를 국사당 고개로 부르다가 후에 국수당 고개로 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이 고개를 넘으면 서쪽은 하면 마일리, 북쪽은 북면 백둔리로 연결되지만 사람의 왕래가 없어 험한 소로만 남아있다.
※조사년월일 : 1999. 8. 10. 제보자 : 이장 하 철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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