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리 마을명 : 읍내8리(자라목: 鼈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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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명 : 읍내8리(자라목: 鼈首)
선조 33년 명필 한석봉이 초대 가평군수로 재임할 때 시인, 묵객과 학자들이 산수 좋은 가평으로 찾아와 학문에 전념하는 풍토가 생겨나게 한 곳이다.
읍내 8리는 늪산과 보납산을 향교 쪽에서나, 강원도 남서면 쪽에서 바라보면 꼭 자라가 강속에서 떠오르는 형극을 하고 있으며, 현재 경축국도와 철도가 지나가는 곳이 자라의 목처럼 낮은 언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이 고개를 자라목(鼈:자라별, 項:목항)고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옛날 이 고갯길을 가려면 그 폭이 너무 좁아 반쯤 올라갔을 때 사람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비켜설 수가 없어서 다시 내려가지 않으면 통행할 수 없을 정도로 좁고 가파른 고개 길이었다. 도로와 경춘 철도를 건설할 때에 이 자라목 고개를 절개하여 낮추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자라목 고개라고 부른다. 또 자라목 고개 너머의 보납산 남쪽 기슭도 북한강으로 급경사를 이루어 보행하기가 어려워, 이 길은 별로 이용되지 않았으며, 춘천을 가는 길은 개곡리에서 줄길리로 넘는 것이 소홀했다고 한다.(자세한 내용은 「가평군지」1107쪽에 기술하고 있다.)
그후 도로가 개설되면서 자라목 고개가 절개되고 2차선 국도로 개발되어 경춘 국도의 큰 길목이었으나, 현재는 남쪽 늪산과 초연대 사이를 절개하여 4차선 국도가 신설되자 구도로에는 교통량이 뜸하다.
읍내 8리에는 제방을 쌓기 전에는 늪산(牛山 : 소가 누어있는 형상이라는 뜻이 변화한 것) 산록에 늪이 많이 생겨서 물고기를 많이 잡았는데 최근 제방을 쌓고 난 후로는 어도(魚道)가 막혀 물고기를 잡을 수 없다. 늪산이라는 이름도 산록이 늪으로 둘러싸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현재는 대부분의 늪을 매립하여 농경지로 이용하고 있으며, 태화공업사와 목공소의 부지는 6·25 전란 중에 미군 62공병대가 주둔하였던 곳이다. 늪산에는 보납사라는 사찰이 있고 늪산 정상에는 6.25 참전기념비가 있다. 늪산은 새벽녘에 가볍게 등산하여 읍내 시가지를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읍민들의 휴식처 겸 체력 단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보납산과 늪산 중간 봉우리는 옛날에는 강원도와 봉화로 위급을 알리는 봉화대가 있던 문필(文筆: 붓과 같은 모양)봉, 노적(露積: 곡식을 쌓아 올린 노적가리 같은)봉이 있고, 늪산 옆에 소(牛) 또는 자라(鼈)의 머리가 한강 물을 마시는 모습의 초연대라는 봉우리가 있다. 또한 현재 도로공원이 있는 골짜기를 밭베루 골짜기라 하였는데 그 안에 주막이 있었고 그 앞 강가에는 강건너 서천(햇골)리로 왕래하는 나루터가 있었으나 육로 발달로 수년 전에 폐지되었다.
현재 이곳 8리 마을 내에는 한울테니스장 그리고 북한강변에 위치한 북한강 유원지가 있다. 보납산에서 흘러내리는 보납약수터에는 새벽부터 주민들이 줄을 잇고 있으며, 구 경춘국도 변에 있는 약수는 서울 춘천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약수를 공급하여 승용차가 줄을 잇고 있다.
보납산에 있는 보광사에는 초대 군수 한석봉이 공부하였다는 석실(石室)에 그분의 영전을 모시고 있다. 보납산이란 이름은 기우제를 지낼 때 한호선생이 쓴 천하명필의 축문을 이 산에 감추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조사년월일 : 1999. 8. 11. 제보자 : 이장 박요식, 주민 김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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