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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색리 마을명 : 전말과 쇠목이골(牛項: 소의 목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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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평문화원
댓글 0건 조회 5,762회 작성일 15-06-1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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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명 : 전말과 쇠목이골(牛項: 소의 목아지)

갱골에서 경반리로 넘어가는 막다른 골짜기 지명으로 전말은 옹기를 굽는 가마와 옹기를 팔던 옹기전이 있던 곳이라고 하며, 쇠목이골은 쇠의 모가지(項)처럼 우묵하게 들어간 고개라는 뜻과 쇠를 녹여 농기구를 만드는 대장간이 있던 곳이라 쇠를 먹는 골, 소를 사육하던 곳 등의 여러 설이 있다.

이 소목이골과 어우당 유몽인의 묘인 용묘에 얽힌 전설도 있다. 어우야담의 저자인 어우당 유몽인은 예조·이조 참판 등을 역임한 문무를 겸비한 분이었으나, 불행하게도 인조반정 때 광해군의 측근이라는 구실로 아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처형직전 유언으로 가평 하삼익골(下三益谷 : 下色峴)에 묻어 달라고 하면서 묘 자리가 명당자리라는 것을 누설하지 말고, 세 손자가 과거를 보더라도 따로따로 보라고 하였다. 그런데 손자들은 유언을 잊고 함께 과거에 응시하여 모두 합격하였다. 그들의 성적이 우수하고 인품이 출중하여 필시 명문가의 자손이라고 짐작하여 그 가문을 캐니, 반정의 역신으로 몰려 처형된 어우당의 손자들이었다.

그 묘소를 파 보니 승천 직전의 용이 꼬리가 명주실에 얽혀 승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용을 당 고개(성황당이 있는 고개) 마루에 묶어두고, 쇠먹이골(또는 쇠목이 골 : 牛項)에서 쇠 물을 끓여다가 용을 태워 죽였다는 전설이 마을에 전해온다.

그 후손들의 보복을 두려워 한 반정공신들이 그들을 등용하였을 리 없고, 그래서인지 유몽인은 고흥 유씨라고 하는 데 현재 그 묘는 용묘라고 부르는 것과 달리 돌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조사년월일: 1999. 8. 17. 제보자: 이장 박 양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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