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리 ♧ 이천리(梨泉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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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리(梨泉里)
이천리는 본래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盧門里)의 일부였으나, 1973년 7월 1일 대통령 제6542호에 의하여 노문리의 일부였던 영천(靈泉), 배치, 왕배 지역을 가평군 설악면으로 편입하고, 배치의 배이(梨)자와 영천의 샘 천(泉)자를 합하여 이천리(梨泉里)라 명명한 것이다. (가평군지 p1113 참조)
이 부락의 위치는 곡달산(鵠達山)과 화야산(禾也山) 사이에 있는데, 37번 국도 진입로인 청평신 대교에서 설악면사무소 소재지(신천리)로 가는 첫 고개―솔고개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회곡2리 "물푸니"마을을 지나면 이천리에 다다른다.
이 곳 이천리는 의령 남씨의 낙향조 남언경이, 1590년(宣祖 24)에 이 곳 영천 부락에 낙향하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니 박순(朴淳), 김상용(金尙容) 등 피난 온 사대부(士大夫)를 규합하여 의병을 일으키고, 양근, 가평, 홍천, 춘천 등지에서 근왕병(勤王兵)을 모집한 결과, 의병의 수가 360여명이나 되었으며, 그 후 의병을 인솔하여 곳곳으로 옮겨가며 왜적과 싸워 큰 전과를 올린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충열의 고장이다.
남언경은 양명학(陽明學)자로 유명하다.
그의 학설은 훗날 실학사상에 큰 뿌리가 되었으며, 그가 교류한 명류(名流)들 또한 대단하다.
일찍이 서경덕(徐敬德)의 문신으로 수많은 장재들과 학문을 토론했고, 퇴계, 율곡, 우계 동 그가 만나서 학문을 토론(討論)한 사실이 모두 행장(行莊)에 기록해 전해온다.
그의 후손 남홍중(南弘重), 남준기(南?冀)의 묘가 모두 영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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