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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곡리 ♧ 회곡(檜谷)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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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평문화원
댓글 0건 조회 6,344회 작성일 15-06-1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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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곡(檜谷)리

 본래 양평군(楊平郡) 북하도면의 지역으로서, 회가 많이 생산되는 곳이라 하여, "회골" 또는 "회곡"이라 불렀다고 한다. 일설로는 청평댐이 준공되기 이전, 회곡리 앞 하천을 전여울(電灘; 번개처럼 빠른 여울)이라 하였는데, 전(電: 번개 전)자는 전나무회(檜)자로, 여울(灘: 여울 탄)을 고을 골(谷: 고을 곡)자로 완전(訛傳)되어, 회곡리(檜谷里)라 하였다고도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페합 때 "회곡리"로 명칭이 정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가평군지 및 가평군 향토지 참조)

회곡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지금은 세 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옛날에는 이곳을 포함한 회곡리 주변지역을 나라에서 도읍지로 적당한 곳이라 하여 지목했다고 한다. 이 소식이 온 천하에 퍼져 나가 과연 이곳이 도읍으로 정할 만큼 손색이 없는 곳인가 하고 사람들이 많이 구경을 하러 왔다. 제일 먼저 도착한 산이 지금의 보납산인데, 이곳을 향하여 한참 오다보니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오랜 여행을 하여 갑자기 피곤해져 잠시 쉬었다 가려고 주저앉았다. 그런데 멀리서 도읍으로 지목된 곳이 보이는 것이었다. 너무도 피곤하고 기대를 잔뜩 가지고 왔다가 막상 실망하니 다시 돌아가기도 귀찮고 하여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도읍지를 보러 왔던 산"이다 하여 그 산을 가리켜 '보납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곧 이어 울업산이 도착하여 자세히 지형을 살펴보니 도읍지로서 부적당한 곳이라 생각되어, 한 나라의 무궁한 번창을 위한 출발점으로 새롭게 시작해야 할 곳이 소문과는 달리 그 지세가 발전 일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도에 뚝 끊겨 버려 그만 울면서 돌아누워 버렸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 산을 가리켜 "울고 돌아누워 버렸다"하여 '울업산'이라 불렀다.

마지막으로 곡달산도 역시 구경하러 왔다가 보납산이 가는 길목에 주저앉아 있고, 도착하여 보니 울업산이 돌아누워 있어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 자리를 자세히 훑어보니, 그도 역시 도읍지로서 충분한 형세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는 곡을 하면서 주저앉아 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산 역시 "곡을 하며 눌러앉았다"하여 '곡달산'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던 것이다.

 (가평군지 p1143 참조)

47번 경춘국도(외서면 대성리)에서, 37번 국도(청평∼양평간)가 분기되는 신청평 대교(청평 땜 하류 약 500m 지점)를 건너 좌회전을 하면, 청평수력발전소(발전소의 행정구역이 회곡리) 우측을 지나면서부터 회곡리에 이른다.

1955년 회곡1·2리로 분리되면서, 1리는 청평댐 위 강변을 따라 37번 국도가 산비탈을 돌며, 강변으로는 접객업소(음식점, 호텔 등)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으며, 강 건너 외서면 청평3리와 마주보고 있다.

회곡2리는 37번 국도가 북한강변을 벗어나는 지점에서 설악면 신천리로 넘어가는 솔고개 정상의 서쪽까지의 마을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으나, 관광객의 왕래가 빈번하고, 골프장이 들어오면서 유흥업소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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