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촌리 ♡ 장돌마을(1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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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돌마을(1반)
일명 장석동(丈石洞)이라고도 하며, 돌이 많았다하여 석촌리(石村里)라고도 부른다.
이 부락 앞으로 흐르는 미원천가에 옛날에는 수 백년이 넘는 노송과 전나무들이 마을의 수호수(守護樹)로서 추앙의 대상이었으며, 마을의 운치를 더해 주었고, 이 숲은 황새, 왜가리, 백로 등, 철새들의 서식처로 신선(神仙)고장의 정취를 풍기면서 장석동천 송풍만리(丈石洞天 松風萬里)라는 바위에 시구(詩句)도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소나무, 전나무 숲을 찾을 길이 없고, 서식하던 철새들도 떠난 지 오래다.
이 마을을 석장총(石葬塚)이 있는 즉 시신을 돌로 쌓아 올려서 분묘를 만든 장례 돌무덤으로 조성하던 곳이라는 설도 있으나 돌무덤이 발견된 흔적은 없다.
※ 구한말 왜놈의 밀정이 의병들의 동정을 정찰하려고 혈안이 되고 있을 때, 장돌에서 이천리로 놀러 온 친구가 농담으로, 장석동천(丈石洞天)에서 송풍만리(松風萬里)를 타고, 배치(梨峙; 이전리로 넘어가는 배고개의 한자 표현)를 넘어 놀러 왔으니 잘 대접하게" 하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 농담을 들은 이천리 친구는 장돌에서 이천리까지는 솔고개와 배고개 두 개를 넘어왔지만, 거리로는 십리가 못 미치는 이웃 마을이기 때문에 허풍쟁이 친구의 농을 허허 웃고 넘겼으나,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왜놈의 앞잡이는 "하늘의 장수(丈石洞天을 하늘 나라로 오해)가 솔 바람(松風)을 타고 만리(萬里) 길을 백척 고개(百尺; 배 고개를 한자로 이치<梨峙>로 표기하며, 이를 유식한 체, 배치라고 읽기도 하는 데 배치를 백치<百尺>로 잘못 들은 듯)를 단숨에 넘어서 놀러 왔다니 이는 예사 일이 아니라고 겁을 먹고, 다시는 얼씬거리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다. 이것은 장사와 지명의 유래 그리고 유림을 중심으로 은연중 전개하던 독립정신의 보급과 내 고장의 긍지를 심어주는 깊은 뜻으로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제보자 : 신천리 조중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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