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곡리 ♧ 위곡리(位谷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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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곡리(位谷里)
위곡리는 설악면 사무소(신천리)와 창의리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강원도 홍천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널미재"고개 사이에 위곡1, 2리. 그리고 위곡2리의 동남쪽에서 설곡리에 이르는 마치 고개까지를 위곡3리라 일컫는다.
옛날 선비들이 많이 살았다 하여 위육(位育)이라고 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위육(3리), 위곡·도곡(1리), 창리(2리)를 병합하여 위곡리라 하였다. (가평군지 p1113 참조)
현재 양평군으로 되어 있는 양근군을 익화군(益化郡)으로 부르던 시절, 북면에 속하던 곳이다. 강원도 홍천, 모곡, 등지로 내왕하는 길손들이 날이 저물어 험한 널미재 고개를 넘지 못할 때, 묵어 가던 숙박지로 "마답<馬踏>" 또는 "말마당<馬場>"이라 불렀다 한다. (가평의 자연과 역사 p234 참조)
특히 위곡리는 산세가 수려하고, 지기(地氣)마저 신령(神靈)하다. 그런 연고인지 옛부터 명문대가의 학자와 애국지사들을 수없이 배출하고, 그 정신이 맥을 이어 대대손손 효행 예절이 전승되어 내려오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미 발간된 가평군 향토지 및 가평역사인물지 등을 참고하기 바란다.)
3·1독립만세 운동 당시, 가평 지역의 지도자였던 이규봉 선생이 이 마을 출신으로 선생과 아들 이윤석은 만세 사건으로 투옥되어 옥고를 치렀고, 또 무궁화 꽃으로 한반도의 지도를 그린 "무궁화 사건"의 핵심인물로 민족혼을 일깨웠던 두남(斗南) 이원영 선생도 이곳 출신이다. 한글 학자로 유명한 눈메 한갑수 선생도 이곳 출신이다. 위곡1, 2리 마을을 동서방향으로 86번 국가지원지방도로가 통과하여 서울과 홍천군 모곡을 이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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